
로런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원제: The Life and Opinions of Tristram Shandy, Gentleman)는 1759년 처음 출판된 실험적 소설로, 18세기 문학의 고정관념을 뒤흔든 파격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 트리스트럼 섄디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쓴다는 형식을 취하지만, 정작 그의 탄생조차 제대로 서술되지 않는 이 독특한 이야기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글에서는 책을 읽으며 느낀 시간과 이야기의 본질, 인간 내면의 복잡한 풍경,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시간과 이야기의 본질
『트리스트럼 섄디』를 처음 펼쳤을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자서전이라고 했는데 주인공은 쉽게 태어나지 않고, 이야기는 끊임없이 옆길로 새며, 심지어 검은 페이지와 빈 페이지까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로런스 스턴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것도 결국 이렇게 얽히고설킨 것이 아닐까요.
작가는 직선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환상을 깨뜨립니다. 트리스트럼은 자신의 탄생 이야기를 하려다 아버지의 성격을 설명해야 하고, 아버지를 설명하려면 또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계속해서 과거로, 옆으로, 안으로 파고듭니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곧 이것이 우리 기억의 작동 방식 그 자체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를 회상할 때 한 가지 사건만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하나의 기억은 다른 기억을 불러오고, 그 기억은 또 다른 감정과 연결되며, 결국 우리는 시간의 미로 속을 헤매게 됩니다.
스턴은 이 작품을 통해 시간이란 측정 가능한 물리적 단위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경험임을 보여줍니다. 어떤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지고, 어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트리스트럼이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는 속도보다 인생이 더 빨리 흘러간다고 탄식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느끼는 그 감각, 살아가는 것보다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이 더 느리다는 그 아이러니를 스턴은 18세기에 이미 포착했습니다.
인간 내면의 복잡한 풍경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인물들의 내면 묘사입니다. 월터 섄디, 토비 삼촌, 트림 상병 등 각 인물은 저마다의 집착과 취미,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토비 삼촌의 전쟁 재연 취미는 단순히 기괴한 습관이 아니라, 전쟁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으로 읽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원에 요새를 만들고 전투를 재현하면서, 실제 전쟁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다스립니다.
로런스 스턴은 인물들의 이런 독특한 면모를 비웃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존중합니다. 월터 섄디가 자신만의 이론과 철학에 집착하는 모습도, 처음엔 우스꽝스러워 보였지만 곧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만의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특이한 습관이나 고집스러운 신념도, 그 사람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만든 나름의 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턴이 보여준 인간에 대한 이 깊은 이해와 공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입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트리스트럼 섄디』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아마도 삶에 대한 태도일 것입니다. 트리스트럼은 자신의 인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운의 연속이었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 코가 납작하게 태어나고, 이름도 잘못 지어지고, 온갖 불행을 겪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웃음으로 승화시킵니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인생의 완벽한 서사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계획대로 태어나지 않고, 예상대로 살아가지 못하며, 원하는 결말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스턴이 보여주듯, 삶의 의미는 완결된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의 경험과 관계,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또한 완벽주의에 대한 해독제이기도 합니다. 트리스트럼은 자신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전달하려다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끝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미완성 속에 오히려 삶의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미완성이고, 언제나 진행 중이며, 끝없이 수정되고 재해석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집니다.
『트리스트럼 섄디』를 덮으며, 삶을 대하는 제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려던 마음이 느슨해지고,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더 여유롭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로런스 스턴이 250년 전에 건넨 이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완벽한 이야기를 살려고 애쓰지 말고, 불완전하지만 진실한 당신만의 이야기를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그 불완전함 속에 진정한 인간다움이 있고, 삶의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 책은 가르쳐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