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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라모』 후안 룰포 –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망각의 마을

by 바람의 독서가 2025. 12. 22.

후안 룰포의 페드로 파라모 표지 이미지 - 출처: 민음사 출판사 웹페이지
후안 룰포의 페드로 파라모 - 출처: 민음사 출판사 웹페이지

1955년 멕시코에서 처음 출간된 후안 룰포의 『페드로 파라모』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소설입니다. 겨우 130페이지 남짓한 짧은 분량 속에 죽음과 삶, 기억과 망각이 뒤섞인 코말라 마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죽은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으로 아버지를 찾아 떠난 후안 프레시아도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사라진 기묘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죽음 너머의 목소리들이 전하는 메시지, 페드로 파라모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권력과 집착, 그리고 이 작품이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죽음 너머의 목소리들이 전하는 메시지

『페드로 파라모』를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건 낯설음이었습니다. 주인공 후안이 코말라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폐허가 된 마을이었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죽은 영혼들이었습니다. 후안 룰포는 이 설정을 통해 독자에게 혼란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묘한 울림을 줍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구분되지 않는 이 마을에서, 목소리들은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죽은 이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으로 해방되지 못했고, 생전의 집착과 원한, 사랑과 증오를 그대로 안은 채 땅 속에서 속삭입니다. 한 여인은 아직도 자신을 버린 남자를 원망하고, 또 다른 이는 용서받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이 장면들을 읽으며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후안 룰포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단순히 유령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있을 때 끝맺지 못한 감정들이 얼마나 오래 우리를 괴롭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는 또한 망각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냅니다. 코말라 마을은 한때 번성했지만, 페드로 파라모의 죽음과 함께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사람들은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져가고, 그들의 이야기는 메아리처럼 희미해집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는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잊혀질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요? 후안 룰포는 이 소설을 통해 기억의 중요성과, 망각이 가져오는 두 번째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페드로 파라모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권력과 집착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페드로 파라모는 코말라를 지배했던 지주입니다. 그는 권력과 재산을 쥐고 마을 사람들을 착취했지만, 동시에 평생 단 한 여인 수사나 산 후안만을 사랑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후안 룰포는 이 캐릭터를 통해 권력의 본질과 사랑의 집착이 어떻게 파괴를 낳는지를 보여줍니다.

페드로 파라모의 사랑은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사나를 소유하고 싶어 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수사나가 죽었을 때, 그는 마을 전체에 애도를 강요했고, 사람들이 그의 슬픔을 무시하자 복수하듯 마을을 방치해 황폐화시켰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진정한 사랑과 집착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페드로 파라모가 사랑했던 건 수사나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이상화한 수사나의 이미지였던 것은 아닐까요?

또한 페드로 파라모는 권력이 어떻게 사람을 타락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땅을 빼앗고, 사람들을 착취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가 남긴 것은 황폐한 마을과 원한에 가득 찬 영혼들뿐이었습니다. 후안 룰포는 이를 통해 권력이란 결국 허상이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와 남기는 기억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들

『페드로 파라모』를 읽고 나면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코말라의 영혼들처럼 끝맺지 못한 감정에 사로잡혀 평생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까요? 후안 룰포는 직접적인 답을 주지 않지만, 그의 소설은 우리에게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은연중에 전달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용서와 화해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코말라의 망령들은 용서받지 못한 채, 또는 용서하지 못한 채 영원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살아있을 때 관계를 정리하고, 미움보다는 이해를, 복수보다는 용서를 선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저 역시 이 소설을 읽은 후, 오래된 원망을 내려놓고 먼저 손 내밀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후안 룰포의 작품은 기억의 가치를 재조명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한, 그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망각은 두 번째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싶을까요? 권력과 재산으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베푼 따뜻함과 사랑으로 기억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저는 제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페드로 파라모』를 마치며 저는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에 대해 전과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후안 룰포가 창조한 코말라 마을은 단순한 허구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미해결된 감정들의 은유였습니다. 이 짧지만 강렬한 소설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며, 용서와 화해를 미루지 말라고 속삭입니다. 결국 우리가 남기는 것은 재산이나 권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새겨진 따뜻한 순간들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