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코틀로반』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 이상과 절망 사이, 끝없는 구덩이

by 바람의 독서가 2025. 11. 14.

코틀로반 표지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코틀로반 -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코틀로반』(원제: Котлован)은 1930년대 소련의 집단화 시대를 배경으로, 이상적인 공동 주택을 짓기 위해 끝없이 구덩이를 파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코틀로반'은 러시아어로 '구덩이' 또는 '기초 공사'를 의미하며, 작품 속에서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유토피아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 꿈꾸는 이상과 그것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절망 사이의 간극을 깊이 느꼈습니다. 이 글에서는 코틀로반을 통해 마주한 노동의 무의미함과 상실, 언어로 드러나는 부조리한 현실, 그리고 희망 없는 시대 속 인간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노동의 무의미함과 상실

『코틀로반』의 주인공 보슈체프는 공장에서 해고당한 후, 거대한 공동 주택의 기초를 파는 작업장에 합류합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미래 세대를 위한 이상적인 건물을 짓는다는 명목 아래 끝없이 땅을 파지만, 구덩이는 점점 깊어질 뿐 건물은 결코 세워지지 않습니다. 노동의 무의미함과 상실이라는 주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독자에게 깊은 허무감을 안겨줍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노동자들이 삽을 들고 묵묵히 땅을 파는 모습을 통해, 당시 소련 체제가 강요한 집단 노동의 허구성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일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한 채 시간과 생명만 소진합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읽으며 목적 없는 노동이 인간을 얼마나 공허하게 만드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슈체프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이것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인지 의문을 품지만, 누구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는 나스티아라는 어린 소녀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어머니를 잃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라며, 미래 세대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나스티아는 결국 병들어 죽고, 노동자들은 그녀를 구덩이 속에 묻습니다. 이 장면은 플라토노프가 전하는 가장 비극적인 메시지입니다. 미래를 위해 파던 구덩이가 결국 미래 그 자체를 묻는 무덤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고, 이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붕괴하는지 목격했습니다.

언어로 드러나는 부조리한 현실

『코틀로반』의 또 다른 특징은 플라토노프 특유의 독특한 문체입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어색하고 비문법적인 문장을 사용하며, 당시 소련 사회의 공식 언어와 선전 구호를 비틀어 표현합니다. 언어로 드러나는 부조리한 현실은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 세계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직관적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당대 소련의 이념적 언어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그것을 낯설게 배치함으로써 그 공허함을 폭로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의 행복'이나 '사회주의의 승리' 같은 구호를 반복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은 굶주림과 고통, 절망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이러한 언어와 현실의 괴리를 읽으며, 아무리 아름다운 말도 실체가 없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지식인 프로슈킨의 언어는 코틀로반 속에서 가장 부조리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끊임없이 이론과 이념을 늘어놓지만, 정작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플라토노프는 이를 통해 당시 소련 사회에서 언어가 사고를 대체하고, 진실을 가리는 도구로 전락했음을 비판합니다. 언어의 부조리함은 곧 시대의 부조리함을 반영하며, 독자는 이 낯선 문장들을 읽으며 불편함과 동시에 깊은 통찰을 얻게 됩니다.

희망 없는 시대 속 인간의 모습

『코틀로반』은 희망이 철저히 배제된 세계를 그립니다. 노동자들은 미래를 꿈꾸지만 그 미래는 결코 오지 않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구덩이를 파는 것뿐입니다. 희망 없는 시대 속 인간의 모습은 작품 전반에 걸쳐 무겁게 드리워져 있으며, 이는 단순히 1930년대 소련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전체주의 사회의 보편적 풍경입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코틀로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생기를 잃은 채 기계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들은 감정을 잃었고, 개인적 욕망도 사라졌으며, 오직 집단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보슈체프는 그나마 의문을 품는 인물이지만, 그 역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합니다. 저는 이 인물들을 통해 체제가 개인을 어떻게 말살하고,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목격했습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스티아의 죽음은 모든 희망의 종말을 상징합니다. 노동자들은 그녀를 위해 관을 만들고, 구덩이 속에 묻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아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플라토노프는 독자에게 어떠한 위안도 주지 않으며, 현실의 잔혹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바로 그 냉혹함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간 존재의 가치와 진실을 향한 갈망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코틀로반』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닙니다. 낯선 문체와 암울한 분위기, 그리고 어떠한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 결말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이념이 인간을 어떻게 도구화하고, 이상이 어떻게 악몽으로 변질되는지 깊이 성찰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저에게 진정한 진보란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개개인의 존엄과 행복을 지키는 데 있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코틀로반이라는 끝없는 구덩이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목적 없는 노동과 공허한 이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