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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앙드레 지드 – 사랑의 이름으로 포기한 행복

by 바람의 독서가 2025. 12. 7.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표지 이미지 - 출처: 민음사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 이미지 출처: 민음사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1909년에 처음 출판된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원제: La Porte étroite)은, 순수한 사랑이 종교적 열망과 만났을 때 어떤 비극을 낳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이 글에서는 주인공 알리사와 제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느낀 감정들을 나누고, 완벽을 추구하다 놓쳐버린 행복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지나친 자기희생이 가져오는 상실에 대해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또한 사랑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우리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주인공 알리사와 제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어느 늦은 봄날, 저는 오래된 서점에서 우연히 『좁은 문』을 발견했습니다. 표지에 그려진 닫힌 문 하나가 묘한 끌림을 주었고, 그렇게 시작된 독서는 제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습니다.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통해 사촌 간의 순수한 사랑이 어떻게 비극으로 치닫는지를 담담하면서도 애절하게 그려냅니다.

제롬과 알리사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알리사는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한 후, 세속적인 사랑을 경계하게 됩니다. 그녀는 점점 더 영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며, 제롬과의 결합을 끊임없이 미루고 거부합니다. 제롬은 알리사를 기다리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 땅의 행복이 아니라 천국에서의 완전한 사랑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알리사의 선택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제롬에게 보내는 편지들은 사랑으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거리를 두려는 의지로 넘쳐났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포기합니다"라는 그녀의 논리는 얼핏 고결해 보이지만, 실은 두 사람 모두를 불행으로 이끄는 길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순수함과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때로는 삶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다 놓쳐버린 행복의 의미

알리사는 자신의 사랑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려 했습니다. 그녀에게 결혼은 너무 세속적이고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대신 그녀는 영혼의 완전한 결합, 신과 하나 되는 경지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현실의 행복을 모두 거부했고, 결국 쓸쓸히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더 나은 것'을 추구하다가 '지금 여기'의 행복을 놓치곤 합니다. 더 좋은 직장, 더 완벽한 관계, 더 이상적인 삶을 꿈꾸며 현재를 유보합니다. 알리사처럼 우리도 완벽을 향한 갈망 속에서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행복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앙드레 지드는 이 소설을 통해 종교적 열망이 때로는 삶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알리사의 신앙은 그녀를 더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하며, 결국 텅 빈 삶을 살다 갔습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 현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지나친 자기희생이 가져오는 상실

알리사의 자기희생은 고귀해 보입니다. 그녀는 동생 쥘리에트가 제롬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물러서려 했으며, 자신의 행복보다 영혼의 순수함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쥘리에트는 다른 사람과 불행한 결혼을 했고, 제롬은 평생 알리사를 잊지 못한 채 공허한 삶을 살았으며, 알리사 자신은 사랑도 행복도 없이 마지막을 맞았습니다.

이 작품은 자기희생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상대방의 행복을 원해야 하지만, 알리사의 선택은 오히려 제롬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제롬을 더 높은 경지로 이끌려 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 모두에게서 삶의 기쁨을 앗아갔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희생과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희생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 희생이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알리사의 비극은 그녀가 사랑과 행복을 대립적인 것으로 본 데 있습니다. 그녀는 이 땅의 행복을 누리면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앙드레 지드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삶을 부정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리사가 좁은 문을 통과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너무 좁은 길만을 고집하며 넓은 삶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역설적으로 가르쳐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