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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스탕달 – 야망과 사랑 사이에서 찢겨진 한 영혼의 초상

by 바람의 독서가 2025. 11. 26.

스탕달의 적과 흑 표지 이미지 - 출처: 민음사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스탕달의 적과 흑 - 이미지 출처: 민음사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1830년 출판된 스탕달의 장편소설『적과 흑』(원제: Le Rouge et le Noir)은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청년 쥘리앵 소렐의 야망과 좌절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목수의 아들, 귀족 사회를 꿈꾸다, 위선의 시대, 진실을 찾아 헤매다, 야망의 끝에서 발견한 사랑의 의미를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목의 '적'은 군인의 상징인 군복을, '흑'은 성직자의 검은 옷을 의미하며, 당대 출세의 두 가지 길을 암시합니다. 저는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표지에 쓰인 "야망의 시대를 살아간 한 청년의 비극"이라는 문구에 이끌렸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끊임없이 선택과 욕망 앞에 서 있기에, 쥘리앵의 이야기가 과연 어떤 울림을 줄지 궁금했습니다.

목수의 아들, 귀족 사회를 꿈꾸다

쥘리앵 소렐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뛰어난 지성과 라틴어 실력으로 레날 시장 집안의 가정교사가 됩니다. 그는 나폴레옹을 숭배하며 군인이 되길 꿈꿨지만, 왕정복고 시대라는 현실 앞에서 성직자의 길을 택합니다. 이 선택 자체가 그의 내면에 깊은 분열을 가져옵니다. 그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허락하는 출세의 수단을 선택한 것입니다. 목수의 아들, 귀족 사회를 꿈꾸다는 주제는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레날 부인과의 사랑은 쥘리앵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진실한 감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 자신의 야망을 증명하기 위한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려 했던 그의 모습에서, 저는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스탕달은 쥘리앵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한 인간이 사회적 신분 상승과 순수한 감정 사이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갈등하는지 보여줍니다. 그가 레날 부인의 손을 잡는 순간, 그것이 사랑인지 전략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장면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파리의 귀족 사회로 진출한 후, 쥘리앵은 또 다른 선택 앞에 섭니다. 라 몰 후작의 딸 마틸드와의 관계는 그에게 명예와 지위를 약속했지만, 그의 영혼은 점점 더 공허해져 갔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쥘리앵은 모든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귀족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예법을 익히며, 겉으로는 완벽하게 상류사회에 적응해 갔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 순수했던 감정들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습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입니다.

위선의 시대, 진실을 찾아 헤매다

스탕달이 그려낸 19세기 프랑스 사회는 철저히 위선적입니다. 귀족들은 겉으로는 도덕과 신앙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신학교에서 쥘리앵이 목격한 성직자들의 이중적인 모습, 파리 사교계의 공허한 대화들은 당대 사회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쥘리앵은 위선의 시대, 진실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자신마저 위선자가 되어가는 아이러니를 경험합니다. 그는 이 위선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도 가면을 쓰고, 진심을 숨기며, 계산된 행동만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신학교 시절의 묘사는 인상적입니다. 쥘리앵은 진정한 신앙심을 가진 학생들이 오히려 배척당하고, 정치적 수완과 아첨에 능한 학생들이 출세하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이는 종교마저도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당대 사회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실보다는 겉모습이, 실력보다는 연줄이, 정직함보다는 처세술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실 말입니다.

그가 레날 부인을 해하는 장면은 작품의 클라이막스입니다. 이 극단적인 행동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절규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후, 쥘리앵은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레날 부인과의 순수했던 감정, 그 자체가 그의 유일한 진실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아이러니를 보았습니다. 스탕달은 쥘리앵의 재판 과정을 통해 사회의 계급적 편견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쥘리앵이 귀족 출신이었다면 용서받았을 범죄가,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는 모습은 당대 사회의 불평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야망의 끝에서 발견한 사랑의 의미

죽음을 앞둔 쥘리앵은 평온함을 되찾습니다. 그는 더 이상 출세를 꿈꾸지 않고, 레날 부인과의 대화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 야망의 끝에서 발견한 사랑의 의미는 작품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스탕달은 이 마지막 장면들을 통해,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은 야망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진리를 전합니다. 쥘리앵의 비극은 그가 이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 그 순간,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졌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적과 흑』을 읽으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닌,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을 좇고 있을까요? 쥘리앵처럼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지위에 집착하다가,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요? 스탕달의 작품은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쥘리앵이 감옥에서 레날 부인과 나누는 대화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모든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 그 순간, 두 사람은 비로소 진실한 감정을 나눕니다.

이는 우리가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허영과 계산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공과 인정에 대한 욕망이 오히려 우리를 고립시키고, 진실한 연결을 방해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쥘리앵은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먼저 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망을 추구하되, 그것이 우리의 인간성을 잃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출세를 꿈꾸되,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진실한 관계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책은 출세와 성공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그 꿈의 본질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사회가 정의한 성공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진실한 목소리가 원하는 삶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뼈아프게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