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명익의 『심문』은 1939년에 발표된 한국 근대문학의 중요한 단편소설입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지식인이 경찰서에서 겪는 고문과 심문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심문이라는 이름의 폭력,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침묵이 가진 저항의 의미를 차례로 살펴보며, 최명익이 던진 묵직한 질문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심문이라는 이름의 폭력
『심문』을 처음 펼쳤을 때, 저는 제목이 가진 냉정함에 먼저 주목했습니다. '심문'이라는 단어는 법적이고 공식적인 절차를 암시하지만, 최명익은 이 단어 뒤에 숨겨진 잔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주인공은 명확한 혐의도 없이 경찰서로 끌려가 밤새도록 폭력적인 신문을 받습니다. 심문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것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는 조직적 폭력이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심문관들은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정해진 답을 강요하고, 그 답을 얻기 위해 폭력을 사용합니다. 최명익은 이 장면들을 절제된 문체로 묘사하면서도, 독자가 그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심문실의 차가운 조명, 반복되는 질문들, 그리고 예고 없이 날아오는 주먹 - 이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한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권력이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의 무게를 절감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존엄성
그러나 『심문』의 진정한 힘은 고통의 묘사에만 있지 않습니다. 최명익이 포착한 것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지켜지는 인간의 존엄성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육체적으로는 무너지지만, 정신만큼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거짓 자백을 강요받는 순간에도 자신의 내면에 남아있는 마지막 자유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읽으며 저는 존엄이란 거창한 행동이나 영웅적 저항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주인공은 특별한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두려워하고, 고통에 신음하며, 때로는 굴복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의식을 지키려 애씁니다. 최명익은 이처럼 평범한 한 사람이 극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내면의 투쟁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육체는 폭력에 굴복할 수 있어도, 정신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 이것이 바로 인간 존엄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이 장면들은 저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침묵이 가진 저항의 의미
『심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요소는 침묵의 의미였습니다. 주인공의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저항의 한 형태였습니다. 심문관들이 원하는 답을 거부하고, 거짓을 말하기를 거부하는 침묵. 최명익은 이 침묵 속에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저항 의지를 담아냈습니다.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 침묵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공개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던 시대에, 침묵은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합니다. 주인공의 침묵은 폭력적인 권력에 대한 거부이자, 인간의 내면은 외부의 힘으로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때로는 침묵이 어떤 웅변보다 강력한 저항이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부당한 요구 앞에서 단호히 거부하는 것,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최명익은 이 짧은 소설을 통해 인간의 존엄이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지켜내는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폭력 앞에서도 자신의 정신만큼은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크고 작은 부당함 앞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