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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 가난이 빼앗아간 것들에 대하여

by 바람의 독서가 2025. 11. 11.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표지 이미지 - 출처: 문학과지성사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미지 출처: 문학과지성사 출판사 공식 홈페이지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처음 펼쳤을 때, 저는 단순히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제 안에서는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난장이 가족을 중심으로 철거와 가난, 노동과 소외의 문제를 다룬 연작소설입니다. 1970년대 급속한 경제 성장 이면에 가려진 도시 빈민들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한 이 소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한 발전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 아버지는 키 작은 노동자입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고, 좁은 판잣집에서 가족과 살아갑니다. 조세희 작가는 이 가족의 일상을 통해 가난이 단순히 돈의 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꿈까지 빼앗아가는 폭력임을 보여줍니다. 난장이 아버지가 굴뚝 위에 올라가 은하수를 바라보는 장면은 제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는 왜 그곳에 올라갔을까요.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가난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난장이의 세 자녀, 영수, 영호, 영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대응합니다. 영수는 분노하고, 영호는 공부하며, 영희는 공장에서 일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선택도 그들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합니다. 조세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불평등의 벽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철거와 재개발, 그리고 인간의 가치

소설 속 행복동 철거 장면은 단순한 공간의 상실이 아닙니다. 그곳은 난장이 가족이 삶을 일궈온 터전이자, 이웃과 나눈 온기가 스며든 곳입니다. 그러나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쫓겨나고,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조세희 작가는 이 과정을 냉정하게 묘사하면서, 개발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합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며 저는 우리 사회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배제해온 존재들을 떠올렸습니다. 아파트 숲이 들어선 그곳에서 난장이는 살 수 없습니다. 경제 성장의 수치는 올라갔지만, 그 안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목소리를 기록한 문학입니다. 작가는 난장이라는 상징을 통해 소외된 자들의 고통을 보편적 언어로 번역해냅니다.

지금 여기,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

이 작품이 1978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주거 불안정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들. 조세희가 그린 1970년대의 풍경은 오늘날의 우리 모습과 겹쳐집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문학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조세희 작가는 통계나 수치가 아닌, 구체적인 인물과 이야기로 사회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난장이 아버지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진실을 향한 고발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나는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나의 일상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가.

저는 난장이 아버지가 쏘아 올린 그 작은 공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이거나, 저항이거나, 혹은 우리를 향한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조세희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기억할 것을 요구합니다. 성장의 그늘에서 사라져간 이름 없는 사람들을, 그들이 꿈꿨던 소박한 일상을,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더 나은 세상을. 이 소설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한 작품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읽어야 할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