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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 전쟁이 앗아간 소녀의 봄날

by 바람의 독서가 2026. 1. 15.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미지 - 출처: 웅진지식하우스 웹페이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출처: 웅진지식하우스 웹페이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992년에 처음 출간된 자전적 성장소설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개성에서 서울로 피난 온 소녀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낸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개성에서의 마지막 봄, 전쟁이 바꾼 일상의 풍경, 상실 속에서 발견한 성장의 의미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개성에서의 마지막 봄

박완서는 이 작품에서 전쟁 이전 개성에서의 삶을 따뜻하고도 애틋하게 묘사합니다. 개성에서의 마지막 봄은 주인공 소녀에게 평화로운 유년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송악산, 들판 가득 피어난 싱아, 그리고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가족의 일상이 그 시절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소녀가 어머니와 함께 들판에서 싱아를 뜯던 장면입니다. 봄볕 아래 초록빛 냉이를 캐며 나누던 소소한 대화, 그 평화로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전쟁 이후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작가의 시선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제목의 '싱아'는 개성 토박이말로 냉이를 뜻하는데, 이 소박한 봄나물은 작가가 잃어버린 유년의 평화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흔히 일상의 소중함을 잃고 나서야 깨닫곤 하는데, 이 소설은 바로 그 깨달음을 섬세한 문장으로 전달합니다.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상실이 무엇인지 몰랐던 그 시절의 밝음이 오히려 더 슬프게 다가옵니다. 작가는 이 부분을 통해 전쟁이 단지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행복과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전쟁이 바꾼 일상의 풍경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소녀의 가족은 개성을 떠나 서울로 피난을 오게 됩니다. 전쟁이 바꾼 일상의 풍경은 한 가족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았습니다. 낯선 서울에서의 삶, 피난민으로서의 설움, 그리고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겪는 변화는 독자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피부로 느끼게 합니다.

특히 오빠 관련 내용은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전환점입니다. 학도병으로 나간 오빠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소녀와 그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머니의 슬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했던 선택들이 소녀를 빠르게 성장시킵니다. 전쟁은 어린 소녀에게서 천진난만함을 빼앗고, 그 자리에 생존의 무게를 채워 넣었습니다.

전쟁이 바꾼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 말투, 관계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따뜻한 밥 한 끼, 가족이 함께 모여 앉는 저녁 시간이 이제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박완서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가 단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영역까지 깊숙이 파고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상실 속에서 발견한 성장의 의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가장 큰 울림은 바로 상실 속에서 발견한 성장의 의미입니다. 박완서는 이 작품에서 비극을 단순히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견디고, 성장하고, 다시 일어서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소녀는 오빠를 잃고, 고향을 잃고, 평화로웠던 유년을 잃었지만, 상실 속에서 발견한 성장의 의미를 통해 삶의 본질을 배웁니다. 어머니의 강인함,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실제로 전쟁을 겪은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화와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상실을 경험합니다. 그때마다 이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 즉 상실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이 위안이 됩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과거를 기억하되 그것에 갇히지 말고, 현재를 살아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평범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며 그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전쟁 회고록이 아니라, 인간의 회복력과 희망에 대한 아름다운 증언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며, 매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책입니다.